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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미술에서 종교화,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미술사 2024. 3. 5. 19:16

    서양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교화,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에 대해 알아봅니다.

     

    종교화

    서양 미술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종교화입니다. 종교화는 주로 종교 기관이었던 성당이나 교회의 요청으로 주문 제작되었습니다. 종교화는 종교적인 주제와 상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예를 들면 기독교 예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성인들의 삶과 기적, 성모 마리아 등이 주요한 주제로 다뤄졌으며, 십자가나 천사 등을 종교적인 상징으로 자주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주제와 상징들은 종교화에서 빛과 그림자, 색채, 형태 등의 예술적인 요소를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화는 종교와 예술이 만나는 접점을 이루며 종교에서뿐만 아니라 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종교화는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 이후에 발전했고 성상화나 제단화처럼 신자들의 기도와 묵상을 위한 그림, 교회를 장식하는 용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대중들에게는 그림으로 성경을 설명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특히 중세 시대에 예술가들이 신성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했고 종교적인 믿음과 경외심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종교화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르네상스 시대부터는 예술가들이 종교화 형식을 통해 다른 주제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더욱 세밀하게 다루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는 기도할 때 쓰인 성상들이 점차 감소했고 종교화도 특별히 위탁받아 제작하는 경우가 아니면 화가 본인이 성경의 소재를 표현하거나 성찰하는 차원에서 그려졌습니다. 서양 미술에서 종교화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미술 양식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르입니다. 비잔틴 예술, 고딕 예술, 르네상스 예술 등 각 시기와 양식마다 종교화의 특징과 발전 양상은 다르며, 예술가들은 각 시대의 문화와 종교적인 영향을 작품에 반영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양식들은 서양 미술에서 종교화뿐만 아니라 회화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종교화는 종교적인 내용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과 정신과 내면을 탐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발전했고 서양미술의 핵심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

    서양 미술에서 종교화,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서양 미술에서 종교화,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역사화

    서양 미술에서 종교화 다음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그림이 역사화입니다. 역사화는 중요한 역사적인 이야기와 사건, 그와 관련된 인물을 다양한 시각적인 요소로 표현하며 특히 18-19세기에 걸쳐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발전한 장르입니다. 역사화의 기능은 무엇보다 당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하는 일이었습니다. 또 특정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시대를 이해하고 배우게 합니다. 역사화를 통해 인간의 행동과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프랑스 화가인 자크 루이 데이비드가 그린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로마의 고대 전사들이 가족과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그려 도덕적 헌신과 충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지막 만찬'은 예수와 12명의 제자의 마지막 만찬이라는 종교적 역사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역사화로 정교한 구도와 구성, 인간의 다양한 심리 묘사와 감정을 나타냅니다. 역사화 중에는 에드워드 호퍼처럼 국가의 정체성과 가치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도 있는데,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20세기 초 산업화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된 미국 도시민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그려 현대 사회의 양면성을 제기하였습니다. 때로 역사화는 비유와 선전의 기능으로도 쓰였습니다. 앙투안 장 그로가 그린 '페스트에 걸린 병사들'을 보면 나폴레옹을 환자를 치유하는 예수로 묘사했고, 이 작품은 나폴레옹의 행동에 대한 기록에 그치지 않고 신성 황제를 성경 이야기에 비유했던 당시의 경향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과거 시대의 흐름과 변화, 문화유산의 가치, 당대 사람들의 도덕적 가치를 살펴볼 수 있는 장으로서 역사화는 서양미술에서 중요한 장르입니다. 

     

    초상화

    초상화는 특정 인물의 얼굴, 표정, 신체적 특징, 때로는 정체성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서양 미술에서 초상화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되었습니다. 중세를 거쳐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개인의 가치가 점차 중요시되면서 초상화 역시 독립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왕실, 귀족, 고위 성직자들은 화가를 초빙해 자신의 초상화를 자주 그렸는데 점차 상인이나 장인, 학자 그리고 화가들까지도 모두 초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두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단체 초상화도 있었습니다. 부부 초상화는 매우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고, 결혼식 때에는 결혼 기념사진을 찍듯이 초상화를 그렸고, 부부가 나이 든 모습도 그려서 가족들에게 남겼습니다. 루벤스의 '인동덩굴 나무 아래의 루벤스와 이사벨라 브란트'도 결혼 초상화에 속합니다. 단체 초상화는 가족 외에도 직업 단체를 위해 제작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직물 조합 길드원들의 초상'은 조합 이사들의 초상화인데 이런 단체 초상화는 해당 조직의 사회적 지위, 단체 내부의 계층과 역할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초상화는 시대마다 스타일과 기법이 변화하면서 인간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화가들의 자화상은 비교적 특수한 유형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가들이 예술 후원자와의 관계에서 좀 더 자율적인 지위를 얻게 되면서 화가로서 자의식을 드러내는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전적 기록이기도 하고 자기의 명성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기도 했으며, 스스로가 화가이자 모델이기 때문에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렘브란트는 평생에 걸쳐 자화상을 제작해 자기 외모와 심리상태가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했고, 반 고흐는 고갱과 다툰 후에 자기 귀를 자른 모습을 그렸는데 그가 앉은 뒷배경에 일본의 우키요에가 걸려 있어 화가의 관심사도 엿볼 수 있습니다. 초상화는 현대까지도 예술의 주요 장르로 남아 있는데 사진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초상화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가치는 여전히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풍경화

    자연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마음입니다. 이를 그림으로 묘사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경건함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풍경화는 처음엔 보조적인 역할로 종교나 역사를 주제로 한 그림의 배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풍경화가 상대적으로 드물고 주로 건축물이나 도시의 모습을 다루었습니다. 중세와 고딕 시대에는 풍경화가 종교적인 주제와 결합하여 성경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아직 공간에 대한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던 초창기에 그림의 배경은 대부분 평면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배경에 풍경을 암시하는 소재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점점 그림 속의 속 풍경은 분명해졌지만 여전히 화면의 배경으로서 보조적인 역할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풍경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때부터 예술가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현실적으로 재현하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에 유럽에서는 최초의 순수 풍경화가 나왔습니다. 독일 화가 알트도르퍼가 그린 '다뉴브의 풍경'이었는데 그림 속에는 사람도 이야기도 없이 나무, 호수, 언덕에 대한 묘사뿐이었습니다. 17세기에 풍경화는 네덜란드에서 독립적인 장르로 부상했습니다. 반 고흐에게 풍경화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어서 그의 마직막 작품 '까마귀가 날아드는 보리밭'을 보면 자연 풍경을 사실적이고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강렬한 색과 붓 터치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분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가 되면 대자연의 영원함과 신비로움을 그림으로 표현한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풍경화도 발전해 절정기에 다다릅니다. 20세기 이후 현대미술가는 자연의 풍경은 자연 그 자체에 대한 묘사하지 않고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거나 시각적으로 조형미를 실험하는 매개로 사용되었습니다.

     

    정물화

    서양 미술에서 정물화는 사물을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꽃과 꽃병, 과일, 동식물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물건이 정물화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실 18세기까지만 해도 아카데미즘의 관념적 영향으로 정물화는 가장 낮은 단계의 그림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보통 정적인 물건을 그렸기 때문에 대상을 모방하는 과정에 인간의 창의성이나 감정이 결여되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정물화의 도상 안에는 풍부한 상징과 의미, 상상력이 담겨 있습니다. 17세기 보챙이라는 화가가 그린 '체스판이 있는 정물'에는 체스판 주변에 악기와 악보, 포도주와 빵, 꽃, 거울, 카드와 주머니 등을 함께 그렸습니다. 악기와 악보는 청각을, 포도주와 빵은 미각을, 꽃은 후각을, 거울은 시각을, 체스판은 촉각을 의미하고 이는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을 상징합니다. 포도주와 빵은 기독교에서 성찬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에 비해 카드와 주머니는 당시 사람들이 음악과 연관지었던 유흥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정물화 속 상징들은 이렇게 객관적이기도 하고 주관적이거나 당대 특유의 관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정물화의 대상이 되는 물건들이 반듯하고 화려한 경우도 있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샤르댕은 가오리 배를 가른 후 벽에 걸어 놓고 그 옆에 고양이와 도자기가 놓인 약간은 놀라운 정물화를 그렸습니다. 화려한 꽃도 값진 물건도 아니지만 죽은 생선류 옆에 마치 먹이감을 노리는 듯한 고양이와 반대쪽에 놓인 동적인 도자기가 묘한 대조를 보입니다. 사실적이고 거칠게 표현되었지만 이 그림이 전시에 출품되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외국 도자기, 은으로 된 주전자, 탐스러운 과일 같은 화려한 정물이 그려진 정물화를 통해서는 그림의 수요자의 계층괴 취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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