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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미술에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정밀과학 그리고 인프라신
    미술사 2024. 3. 5. 04:14

    서양 미술에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정밀과학 그리고 인프라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마르셀 뒤샹에 대해서

    마르셀 뒤샹은 서양의 현대미술사에서 핵심 인물로 거론되는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특히 뒤샹 없이는 오늘날 개념미술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모든 형태와 경향의 기초를 마련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뒤샹 이후의 현대미술은 그 전과 다른 새로운 미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수용성과 자발적인 태도 그리고 대담함을 지녔던 뒤샹은 청년 시절 이미 파리의 입체파 그룹의 멤버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입체파 작품 중 하나인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 2'를 미국 뉴욕 아모리쇼에 출품하면서 스캔들과 함께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화가의 삶을 그만두고 시작한 작업은 서양미술사에 개념미술가로서의 독특한 유산으로 남게 됩니다. 유리를 가지고 시도했던 실험적인 작품들을 시작으로 대량 생산되는 일상의 기성품을 예술적인 맥락에 설치하고 때로는 설명을 첨가해 예상하지 못한 의미를 만드는 '레디메이드' , 자신의 또 다른 여성 자아인 '에로즈 셀라비'라는 페르소나를 만들어 유머가 섞인 알 수 없는 말장난으로 언어를 예술적으로 탐구하는 주체로 삼기도 했으며, 동력 장치로 움직이며 착시를 일으키는 '정밀과학'을 만들어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순수미술의 영역에서 벗어나 기계와 기술의 영역에서도 표현했습니다. 또한 항상 자기 작품들을 직접 정리하고 관리하며 보존하는 데 노력했는데 이런 행위까지도 예술 활동으로 연결해 작품을 미니어처로 복제한 후 휴대용 미술관에 넣어 작품으로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마르셀 뒤샹의 혁신적인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몇 개의 중요한 개념을 알아보겠습니다.

    서양 미술에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정밀과학 그리고 인프라신
    서양 미술에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정밀과학 그리고 인프라신

     

     

    서양 미술에서 레디메이드

    최초의 레디메이드는 마르셀 뒤샹이 부엌에서 쓰는 스툴에 자전거 바퀴를 고정한 것이었습니다. 뒤샹은 벽난로 속의 불꽃을 즐겁게 바라보는 것처럼 자전거 바퀴를 손으로 돌리고 바퀴가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좋았다고 했습니다. 와인병을 여러 개 건조하는 도구로 두 번째 레디메이드 작업을 마친 뒤샹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처음으로  '레디메이드' 조각품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에 서명하고 영어로 문구를 써넣을 생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발상은 예술 작품을 만들 때 이미 제조된 기성품을 사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작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 작가의 아이디어와 선택 그리고 작품에 대한 개념이 그 작품의 독창적인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레디메이드 개념은 미술 작품의 정의와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면서 기존의 미술에 대한 개념을 뒤엎는 양식이 되었습니다.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패션 산업에서 기성복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뒤샹은 이렇게 대량으로 생산된 상업적인 물건이 예술 작품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작가의 서명과 짤막한 문구가 있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 문구는 작품의 제목과는 별개의 것으로 관람객의 정신을 좀 더 언어적인 영역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요소입니다. 자신의 예술 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 개념에 대해 뒤샹은 '미적인 즐거움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선택한 게 절대 아니다. 시각적으로 무심한 반응을 기반으로 선택했을 뿐, 좋고 나쁜 취향은 철저히 배제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시각적인 무심함은 마치 마취했을 때처럼 아무런 감각이나 느낌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가장 유명한 레디메이드는 1917년 흰색의 도자기로 된 남성용 소변기에 가명으로 사인을 하고 전시에 출품한 '샘'이란 제목의 작품입니다. 특별한 심사 없이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출품할 수 있다고 하면서 예술적인 자유를 주창한 전시 주최 측(독립예술가협회)의 말을 시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한 일종의 속임수였습니다. 소변기를 선택한 것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서였는데 전시가 열린 당시만 해도 소변기는 공공장소 특히 미술관에서는 내놓을 수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술작품으로 제출한 '샘'은 물의를 일으켰고 결국 전시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레디메이드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직접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화가의 전통적인 역할을 거부하고 작가의 아이디어를 전면에 내세우며,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물건을 선택해 새로운 관점으로 그 물건의 기능은 사라지도록 배치해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마르셀 뒤샹의 정밀과학

    뒤샹은 통상적으로 '예술적인' 것과 자신의 독특한 사상과 작품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몇 개의 개념 중 하나가 '정밀과학'입니다. 최초의 정밀과학 작품은 '회전 유리판'으로 1920년에 모터를 사용해 두 개의 기계가 돌아가도록 만든 작품입니다. '레디메이드'와 마찬가지로 '정밀과학'이란 말도 기존에 '고품질의 기계적인 정밀함'을 뜻하는 기술적인 용어에서 가져왔습니다. '회전 유리판'은 작동시키면 채색된 다섯 개의 유리판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여러 개의 동심원이 도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킵니다. 뒤샹은 이렇게 회전하는 디자인으로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사진작가 만 레이와 함께 영화를 찍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업은 물론 당시의 정밀과학 기계상에서 파는 물건으로 만들었지만 정확한 장면이 아닌 환영을 만들어냈고 기계도 사실은 정밀하게 다룰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드는 것을 고민했던 뒤샹은 당시의 모더니즘 회화가 시각적인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단순히 시각적인 산물이 아닌 관념에 관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검안 차트나 그와 관련된 용어를 차용해 만든 '큰 유리' 작품에서 그는 시각적인 오브제를 문자 기반의 카탈로그와 짝지어서 개념적인 기반을 확립하고 망막 다시 말해 시각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문자 기반 또는 텍스트는 '관념을 가장 중심에 놓고 언어는 그저 관념의 정밀한 도구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큰 유리' 작품 이후 제작한 광학 작품에 검안 차트를 사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차트는 회화가 보여주는 피상성을 패러디하는 장치이자 차트로 연상되는 실증적인 광학을 통해 뒤샹 자기 작품이 갖는 객관성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마르셀 뒤샹의 인프라신

    인프라신은 관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뒤샹의 개혁적인 성향과 활동의 바탕이 되는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인프라신(infra-thin)'은 '초미세한, 극도로 미세한'이라는 뜻으로 뒤샹이 만든 말인데, 그는 이 단어에 과학적이면서도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시적인 의미를 두루두루 부여하고 싶어서 '신(thin)'이란 단어를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동일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도 두 개를 분리하는 극미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색이든 움직임이든 형태이든 그의 모든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요소입니다. 또한 얇은 종이의 앞면과 뒷면 차이만큼 극도로 얇은 간극까지도 극복하려는 탐구와 고민을 뜻하며, 뒤샹에게 이런 미세한 차이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여전히 남아있는 가능성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거나 연기가 방에 퍼져가듯이 일반적으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차이 또는 변화입니다. 감각을 예민하게 작동시키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현상과 요소에 집중하게 해 세상을 인식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기존의 예술 관념을 뒤집으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뒤샹은 인프라신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리는 과정 자체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고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려 현대미술의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젊은 시절 화가로서 크게 성공했지만 같은 형식의 그림을 그리기를 거부하고, 이미 제작된 물건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를 부여하고, 복제품의 생산과 작가의 서명과 계약 그리고 승인 등 일련의 과정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적 실험을 작품에 적용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시도한 그의 행보는 차이를 넘어서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되어간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가능성이자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이행하게 하는 것이 인프라신이고, 이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반복을 멀리하면서도 누구보다 성실하고 철저하게 자기 작품을 복제했던 뒤샹의 모순 같은 면모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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