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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까지의 서양미술
    미술사 2024. 3. 3. 18:00

    1970년대의 서양미술

    197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중요한 서양미술 양상은 제도 비판적인 미술과 여성주의 미술입니다. 이는 이전 시대의 사회 비판적인 분위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전부터 미국 뉴욕에 거주했던 독일인 한스 하케는 이미 1960년대 중반에 서양미술이 받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영향을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인 다니엘 뷰랭과 미국인 마이클 에셔는 미술관의 미학적이고 경제적인 권력을 비판했습니다. 1971년 린다 노흘린은 '왜 거장 중에는 여성이 없는가?'라는 글에서 기존의 미술사가 남성 중심의 제작과 유통, 그리고 기록 구조에서 만들어졌음을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미술계 내부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여성 미술가들은 몸, 물질, 비정형, 무질서, 공예 등 기존의 서양미술과 문화를 구축한 이원론에서 여성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을 미술 속으로 가져왔습니다. 초기의 여성주의 미술가들은 회화처럼 오래되어 과거의 유산이 많은 전통적인 장르보다는 미술의 새로운 장르로 부각된 사진 작업이나 퍼포먼스, 그리고 비디오 아트 같은 작업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여성주의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함께 배치하는 형식으로 성, 인종, 계급, 외모, 인종 등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을 작품을 통해 보여줍니다. 특히 1970년대에 미국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해방운동이 일어났는데 예를 들면 인종 차별 철폐 운동, 여성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운동, 성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운동으로, 이런 사회적 흐름에 영향을 받은 바바라 크루거는 당대의 사회제도가 만든 차별과 불평등의 현실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했습니다.

     

    1970년대의 새로운 미술 장르인 사진

    1970년대는 사진의 역사상 중요한 시기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와 문화의 큰 변혁이 있었던 이 시기에 사진 역시 변화의 흐름을 타고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컬러 사진이 개발되어 예술적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고, 다큐멘터리 형식의 사진이 등장해 일상의 모습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인 측면의 순간도 카메라에 담게 되었습니다. 또한 실험적인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들로 인해 사진의 대상의 경계가 확장되었습니다. 결국 1970년대의 사진가들은 카메라 기술의 발전 덕분에 새로운 주제와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냈고 이런 작업은 세상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관점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1970년대 초 포토리얼리즘이 유행한 것도 미술가가 직접 찍은 사진에 익숙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진 작업을 한 작가들은 가운데 특히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산업 구조물을 찍은 사진 시리즈로 유형학적 사진이라는 새 형식을 만든 힐라와 베른트 베허 부부는 그들이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가르친 제자들과 함께 사진을 미술사 속의 주요 장르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베허학파로 불리며,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스트루스, 안드레아스 구어스키, 칸디드 회퍼 등이 이 학파에 속합니다. 토마스 루프는 특히 대형 초상 사진 시리즈를 제작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는 사진이란 매체를 적극적으로 실험해 사진에 대한 접근을 광범위하게 시도했습니다. 그는 처음엔 사진은 현실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곧 사진으로는 진실을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작가가 카메라로 현실의 이미지를 통제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이 찍는 사진은 현실 자체가 아니라 일종의 '이차적인 현실' 또는  '이미지의 이미지'를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사진은 실체와 본질과 진실을 보여주는 영역이 아니라 대상의 표면만을 묘사할 뿐이고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실험과 도전의 영역인 것입니다.

     

    1980년대의 서양미술

    1980년대 서양미술의 특징은 한 마디로 미술사의 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1년 영국 런던의 왕립예술원에서 개최된 '회화 속의 새로운 정신'이라는 전시와 같이 이 시기 영국과 유럽에서 열린 일련의 전시들은 이전의 추상미술과 오브제 중심의 미술, 사진을 사용한 개념미술, 비디오 같은 새로운 매체의 유행으로 인해 주류 미술계에서 배제되었던 형상적 회화를 부활시켰습니다. 그래서 데이비드 살레, 줄리앙 슈나벨 같은 미국 화가들의 작품, 신표현주의로 불리는 독일 미술, 트랜스 아방가르드로 불리는 이탈리아 미술이 1980년대를 지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미술은 신화나 설화, 기존 이미지 등을 차용한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유화는 역사와 전통이 길고 원작이 오직 한 점 밖에 없다는 이유로 가치가 있고 판매와 유통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장르입니다. 따라서 1980년대 유화로 그려진 형상적인 회화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특히 당시 미국 뉴욕의 주식시장이 팽창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비평가들은 유독 독일 회화에 대해 퇴폐적이고 독일의 민족주의를 부활시킨다는 우려를 이유로 비난했습니다. 이 시기 서양미술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주요한 전략 중 하나는 차용이었는데 이미 20여년 전부터 미술에서 대중매체의 이미지와 대량 생산된 오브제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예술가 문화가 기존의 것을 재사용하는 것이란 의식이 퍼져 있었고, 이런 현상을 원본과 독창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시물라크룸 이론이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의 서양미술
    1970년대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의 서양미술

     

    1990년대의 서양미술과 yBa (young British artists)

    1990년대에 서양미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비엔날레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정기 국제미술 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또 이전부터 신자유주의와 함께 커진 미술시장,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미술계에서도 세계화와 국제화가 일어났습니다. 1993년 미국 뉴욕의 휘트니 비엔날레가 '다문화주의'를 통해 여러 문화의 차이와 정체성을 구별하려고 시도했듯이 세계 미술계는 세계화의 결과로 나타난 유사성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과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지역성으로 표현했습니다. 1990년대 활동한 영국의 젊은 작가들을 지칭하며 이들은 이후 다음 세기에 유명한 예술가 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데미언 허스트, 줄리언 오피, 트레이시 에민, 사라 모리스, 안토니 곰리, 크리스 오필리, 안젤라 불로흐가 대표적인 yBa (young British artists) 작가이며 이들의 스승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도 있습니다. 이들의 첫 전시는 골드 스미스 미술대학 졸업반이었던 1988년에  참가한  졸업 전시였습니다. 데미안 허스트가 기획한 '프리즈(Freeze)'라는 이 전시는 당시 이 학교 교수였던 마이클 크리에그 마틴 교수의 제안으로 런던 도클랜드에 있는 항만 회사의 버려진 창고 건물을 전시장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전시를 홍보하는 일이 중요했고 전시를 보러 오는 관람객이 많지 않자 데미언 허스트가 포스터를 직접 제작했는데 미술품 컬렉터이자 광고계의 거물이었던 찰스 사치의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졸업 전시를 보러 온 찰스 사치는 당대 영국과 유럽 사회의 문제를 반영한 개념미술 작품들을 인상적으로 보고 작품을 많이 구입했다고 하고 이후에 미술계의 비평가나 큐레이터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yBa라는 용어는 1997년 'Sensation'이란 전시에서 처음 등장했고 이후 꼭 골드 스미스 미술대학 출신이 아니더라도 당시 영국에서 활동한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을 이렇게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비교적 저렴했던 이들의 작품이 찰스 사치를 필두로 젊은 컬렉터나 구매력이 있는 컬렉터에게 소장되면서 미술 작품이 투자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대중화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영국 정부는 이들의 미술 작품에 '영국적 (British)'이란 말을 수식어처럼 붙여 대중매체, 국제 전시, 아트페어, 경매장 등에서 상품의 가치를 갖게 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이들은 영국 미술 시장의 활성화와 영국의 현대미술의 세계화의 계기를 마련했고 2000년 대에 이르러 국제적인 작가로 떠오르면서 미술사적으로 또 경제적으로도 부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yBa 작가들은 불황이었던 시대에 TV를 보면서 유년기를 보냈고,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긴축 경제 정책으로 소위 고급 예술에 대한 지원이 삭감되고 뮤지컬 같은 문화산업이 부흥한 시기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세대입니다. 또한 대중매체를 통해 친숙한 주제와 이미지, 때로는 선정적인 소재를 미술로 표현했고, 영화, 잡지, TV, 인터넷 등에서 주로 정보를 얻는 전 세계의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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