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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전 시대와 1960년대의 서양미술
    미술사 2024. 3. 3. 10:00

    냉전 시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서양미술을 살펴봅니다.

     

    냉전 시대의 서양미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서 진영으로 나뉜 냉전 시대에 이념의 대립은 서양미술에서 추상과 형상의 대립으로 드러났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재건에 힘쓰는 동안 미국은 정치, 경제, 문화면에서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미국의 상징이 된 것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이었습니다. 미국의 평론가들은 스케일이 큰 추상회화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의 형상적인 시골풍 그림은 물론 동유럽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미술과도 구별되고, 그동안 서양미술에서 미국 미술이 추종했던 유럽 미술과도 차별화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그 위를 돌아다니면서 물감을 뿌리거나 떨어뜨려 제작한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은 '자유주의 국가' 미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현대미술과 함께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추방했던 독일이 대전 후에 이념적으로 분단되어 냉전 시대가 되었을 때 자유 진영인 서독에서 추상미술은 국제적인 미술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관영 미술이었던 동독과는 달리 서독에서는 형상적 미술이 위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전반의 서양미술 중 팝아트와 누보레알리즘

    1960년대는 20세기 서양미술에서 다양한 미술 경향이 가장 많이 등장했고 미술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한 시기입니다. 1960년대 초 미국의 평론가 그린버그는 여전히 추상회화를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전에  '아방가르드와 키치'라는 글에서 키치라고 깎아내렸던 대중적이고 형상적인 미술이 이 시기에 팝 아트로 등장해 주류 미술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1956년 영국에서 등장해 영화배우나 광고 사진, 광고판 같은 대중매체의 이미지와 표현 방식을 고급미술로 가져 온 팝아트는 1960년대 초 미국에서 대중성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벽보를 찢어 걸거나 쓰레기를 쌓거나 압축해 누른 작품들을 신사실주의 또는 누보레알리즘으로 지칭하는 선언서가 발표되었습니다. 미국의 팝 아트가 소비주의 양상을 비판 없이 수용한했지만, 1960년대 중반 광고와 같은 대중매체 이미지를 회화로 표현한 프랑스의 신구상과 서술적 구상은 광고에 가려진 소비주의 이념을 비판했습니다. 1960년대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런 입장은 특히 프랑스 영화나 사회학자의 저서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팝아트는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표방한 초월성과 정신성에 반대하면서, 그리고 누보레알리즘은 전후 파리에서 유행한 추상미술인 앵포르멜에 반대하면서 삶과 미술의 일치를 주장했습니다. 미술에 대한 이런 태도 변화는 회화와 오브제 미술을 결합한 라우센버그의 작품이나 해프닝과 플럭서스와 같은 종합적인 예술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를 비롯한 행위 미술가들도 관객 앞에서 미술가가 직접 하는 행위를 미술 분야로 끌어들였는데 이런 미술 형식을 퍼포먼스 아트라고 합니다.

     

    냉전시대와 1960년대의 서양미술
    냉전시대와 1960년대의 서양미술

     

     

    미니멀리즘의 등장

    팝아트가 유행하던 시기에 벽돌이나 동판을 바닥에 나란히 배열한 작업처럼 공장에서 제조된 기하학적 형태의 산업재료가 그대로 사용된 미술이 유행했습니다. 팝 아트처럼 대량생산품을 사용해  '이미지 없는 팝'으로도 불리는 이 양식은 미니멀리즘입니다.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미술가가 최소한으로 개입해 익명의 성격을  띠면서도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이며, 작품의 존재를 지각하는 것 이상으로 작품의 의미는 없습니다. 이 양식이 '모더니즘의 마지막 주자'로도 알려진 이유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불변의 안정적인 정신적 가치로 본 모더니즘의 가장 극단적인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작가의 주관적인 의도는 되도록 배제하고 대상이 갖는 고유한 특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특히 대상의 본질 외에 다른 불필요한 요소들을 없애 최소한의 색과 기하학적인 골격만을 제시해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단순한 형태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 결과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은 작품의 재료와 그 재료의 특성 자체를 마주하면서 미술의 주변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작가의 의도나 이념, 인간의 생각과 감정보다는 작품의 가장 본질적이고 순수한 기본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의 서양미술

    1960년대 후반의 서양미술의 특징은 한 마디로 물질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에서 배제되었던 작품 재료의 물질성과 그 변화, 그것을 알아차리기 위해 필요한 시간,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 작품의 내용과 작가의 감정 같은 요소들이 1960년대 후반이 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로버트 모리스는 펠트 천을 띠로 잘라 바닥에 쌓거나 벽에 걸었고, 리처드 세라는 한 변의 길이가 1미터가 넘고 두께가 2.5센티미터인 납판 4장을 어떤 결합 장치도 쓰지 않고 그냥 서로서로 지탱하도록 세워 놓았습니다. 이런 시도들은 이전에는 작품의 정신을 담은 형태로 구현되기 위해 수단으로 간과되었던 재료의 물질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형식주의적 모더니즘의 강제성과 배타성을 폭로하는 것이었습니다. 1969년에 하랄드 제만 큐레이터는 이런 미술 작품들을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 그리고 그와 유사한 경향의 서양미술 다시 말하면 유럽 미술과 함께 스위스 베른에서 개최된 쿤스트할레에서 '태도가 형식이 될 때'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그의 미술 개념의 기초를 제공한 독일의 미술가 요셉 보이스는 꿀, 고체 기름, 펠트 같은 재료가 열을 보존하거나 내는 물질적 성격을 상징적인 의미와 연결해 온기 조각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미술이 이 재료들처럼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셉 보이스는 또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20세기 후반 서양미술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 예로 1970년대 후반 국제적으로 부상한 미술가들인 안젤름 키퍼, 게로젠바흐, 지그만 풀케 등이 그의 제자들입니다.

     

    개념미술의 등장

    개념 미술은 1960년대에 들어와 미술계가 더 상업화되고 당시의 동시대 미술인 미니멀 아트에 대한 반기를 들며 등장했습니다. 개념미술가들은 그 때까지 미술이 좁은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그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중문화나 기호학 등을 이용해 전통적인 미술작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작가가 작품 제작에 개입하는 과정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를 예술의 비물질화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개념미술은 기본적으로 근대적인 예술관을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두 가지 상반되는 경향으로 나뉘는데, 부정하는 쪽인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후 이성적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미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다다'가 출현했고, 이것이 제 2차 세계대전 후 재평가되면서 미술에 개념 또는 관념과 함께 '레디메이드'를 도입한 마르셀 뒤샹 같은 작가들의 영향으로 부정적인 경향의 기초가 마련되었습니다.


    1960년대 서양미술의 대표적인 작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앤디 워홀은 미술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실크 스크린 인쇄 방법을 작품 제작에 사용했습니다. 그는 1962년 미국 뉴욕의 그래픽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 기술을 배웠고 같은 해 캠벨 수프 캔을 실크 스크린 프린트 기법으로 제작해 주목 받았습니다. 캠벨 수프 캔 시리즈는 워홀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작업한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뉴욕 현대미술관과 비평가들은 팝아트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공개토론에서 앤디 워홀과 같은 팝 아트 작가들이 소비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워홀은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먼로 같은 대중 가수나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계속 제작해 전시회를 열었고 이후에는 마트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제품 박스들을 창고에 쌓아 놓듯 나무 박스에 칠을 하고 전시장에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작가는 도널드 저드입니다. 그는 1960년대에 형태와 관련하여 '상자, 쌓기, 연속'이란 용어를 상정했고, 작품의 재료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대량생산 되는 금속이나 벽돌, 산업용 합판, 콘크리트 등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이런 재료들을 단순하고 반복적인 방식으로 배열하거나 쌓아 이루어진 형태가 공간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또 공간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탐구했습니다. 이런 작업 스타일은 당시에는 회화로도 조각으로도 분류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도널드 저드 역시 자신의 작품이 조각으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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